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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무관 메모 제시…윤병세 "그런 표현 안 한 것 같다"[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판결이 이대로 나면 외교부는 작살난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이같이 말했다는 메모는 한 외교부 사무관의 업무수첩에서 나왔다. 이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손을 들어준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말한다. 당시 전범기업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은 이에 불복해 재상고를 냈다.
윤병세 전 장관은 14일 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공판은 임 전 처장의 구속기한이 연장된 후 첫 재판이었다.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정 모 외교부 사무관의 2013년도 업무 수첩 메모에 따르면 윤 전 장관은 "판결이 이대로 나면 외교부는 작살난다. 범정부적 입장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작살’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며 이러한 발언을 한 경위를 물었다. 윤 전 장관은 "작살난다는 표현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런 표현은) 사용 안 한 것 같다"며 "국내 상황을 넘어서 국제법적 측면을 고려한 정부 입장을 전달하던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제가 현직 때는 말을 정말 빨리했다. 다른 사람이 한 발언을 정 모 사무관이 잘못 받아 적은 걸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이 13일 구속연장이 결정된 후 다음날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눈물로 석방을 간청하기도 한 그는 법정에 들어서며 방청석에 앉은 부인과 눈 인사를 하고 변호인과 웃으며 대화하는 등 밝은 모습을 보였다. /뉴시스검찰은 또 2013년 8월 작성된 ‘외교부 한‧일청구권 대책TF 법률전문가 간담회 결과 보고’라는 문건을 제시했다. 해당 문건에는 "외교적 문제점 등을 적정 채널을 통해 전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지연돼야 한다. 대법관이나 재판연구관에게 정부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협의가 이뤄진 사실을 인식했냐는 질문에 윤 전 장관은 "장관 취임 후 보고받아 알게 됐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애매한 답을 내놨다.
검찰은 2013년 11월에 국제법률국에서 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관련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의견’, 같은 달 동북아1과에서 쓴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 관련 국무총리‧대통령 보고 결과’라는 문건을 보고 받은 기억이 있냐고 물었다. 윤 전 장관은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보니 중요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제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동북아1과 문건에는 '재상고심 승소보다는 따로 재단을 설립해 적절히 배상하자'는 청와대 입장을 두고 "청와대가 하면 ‘소문’이 난다. 외교부가 하는 것이 좋겠다"고 쓰여 각별히 신경을 쓴 흔적도 나타났다.
이날 재판에서는 윤 전 장관이 신일철주금의 소송대리를 맡은 김앤장의 고문과 수차례 만난 사실 역시 밝혀졌다. 검찰이 제시한 월간일정표에 따르면 윤 전 장관은 2013~2014년에 수차례 김앤장 고문이던 유명한 전 외교부 장관과 현홍주 전 주미대사를 만나 만찬을 즐겼다. 이 자리에서 재판 개입에 관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냐는 검찰 측 신문에 윤 전 장관은 "강제징용건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며 "어떤 모임은 부부 동반 친목모임이기도 했다"고 극구 부인했다.
임 전 처장의 공판은 검찰의 수사기록만 20만 쪽에 달해 대부분의 증거자료가 법정내 2대의 실물화상기를 통해 방청객에게 공개된다. 변호인 측이 동의하지 않았거나 재판부가 채택하지 않은 문건을 제외한 모든 증거를 공개해 왔다. 윤 전 장관은 몇몇 문건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특히 2013년 12월 작성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함의와 국가적 부담’이라는 보고서를 두고 "이건 외교부 1급 비밀"이라며 재판부에 비공개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증인은 지금 의견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양심에 의거해 증언을 하러 나온 자리임을 명심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지금까지 윤 전 장관은 재판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윤병세’라는 이름은 임 전 처장의 공판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등장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윤 전 장관은 2013년부터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한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해달라거나 정부 의견 전달 기회를 보장하라는 등의 요구를 법원행정처에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5년 윤 전 장관 휘하에 있었던 김인철 전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은 증인으로 출석한 지난 9일 재판에서 "윤 전 장관의 성품이 워낙 꼼꼼하셔서 (강제징용건과 관련된 보고서) 모두를 직접 확인하고 검토하셨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전 장관은 증인 선서를 하기 전 재판부에 “건강 자체도 좋지 않고 사건 특성상 외교부내 기밀사항과 현 정부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항이 많다”며 비공개신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5분간 휴정하고 상의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증인에게 “몸이 안 좋으면 언제든 말씀하시라. 휴정하고 약을 드시든지 회복할 시간을 드리겠다”고 배려했다.
한편 재판부는 13일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며 임 전 처장의 구속기간을 연장했다. 구속기간은 형사소송법상 법원은 2개월 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어 최장 6개월까지 법정구속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임 전 처장은 최악의 경우 11월 13일까지 구치소에 머물게 됐다.
ilraoh_@tf.co.kr